
PENCILCASE
노-타이틀 아 좀 멋진듯 ㅎ
“만약에 다시 태어나면.”
“...”
“그 때는 만나지 말자.”
오소마츠 형은 지금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까끌까끌한 이불을 매만지다가 눈을 끔뻑였다. 이럴 때는 항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정말 만나기 싫은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서로 힘들게 끝내기는 싫다는 말이겠지. 오소마츠 형이 슬픈 얼굴을 지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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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 형이 시한부라고 한 건 정말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살 가능성이 도저히 보이지 않으셔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가족 분들이 잘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의사의 말에 가족들 다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넋을 놓고 있는데 시한부의 당본인은 꽤 덤덤하게 사실을 받아 들였다. 어차피 죽을 텐데 지금까지 못 했던 일이나 다 하고 죽자면서 오소마츠 형은 나와 같이 낚시터로 향했다.
“야, 이거 사실 너한테만 말하는 거다?”
“뭔데 그러는가?”
“나 시한부인 거 몇 달 전에 알았어.”
오소마츠 형은 킥킥 웃었다. 그 때에는 자기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면서. 정말 의사에게 매달려 질질 짜봤는데 결국은 변하는 게 없더라. 오소마츠 형은 모든 걸 포기한 듯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서야 저렇게 웃을 수도 없겠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하는데 곧 죽는 사람한테 해줄 말이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서 내가 시선을 피했다. 그냥 내가 오소마츠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이었지만. 오소마츠 형이 너답지 않게 왜 이러냐며 내 등을 팡팡 치는 것이 느껴졌다.
“형.”
“엉?”
“지금 기분이 어때?”
“그거야,”
허무하지. 오소마츠 형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저걸 말한 건 내가 처음 일거다.
오소마츠 형은 몇 시간 동안 나와 낚시를 하더니 이제 쵸로마츠한테도 가봐야 한다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한테 한 4천엔을 쥐어주더니 용돈 정도라고 생각해, 하고 쌩 가버렸다. 시발, 이런 걸 누가 좋다고 받겠냐. 4천엔을 물에 힘껏 내던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정말 형이 죽어버리면 못 받아들일 것 같았다.
사실 오소마츠 형은 알게 모르게 장남에 대한 의식이 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애 같더라도 어떨 때는 정말 형이다, 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우리한테 몇 달 지나서야 얘기 한 거겠지. 자기가 받아들이고 혼자 울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혼자 찌들고 무뎌져 가면서. 진짜 저 형은 이럴 때 까지도 등신같이 형 행세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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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에 와보니 거실에는 오소마츠 형만 안 보여서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소마츠 형과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 형은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곧 옆에 있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냥, 의식이 없었던 건지 무언가에 홀렸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이유 없이 오소마츠 형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는 딱히 하는 얘기 없이 나나 오소마츠 형이나 입을 닫고 있었다.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오소마츠 형이 먼저 얘기를 꺼내면서 같이 얘기도 좀 나누고 그랬는데 얘기를 안 하니 너무 불편했다. 오소마츠 형은 언제 이불을 펴놨는지 이불로 기어 들어가서 몸을 웅크렸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이불을 매만졌다. 의미 같은 건 딱히 없었는데 내 손길에 오소마츠 형이 스르륵 일어나면서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 나를 느슨히 바라봤다.
“카라마츠 너, 많이 컸네.”
“되게 새삼스러운데.”
“아니, 그냥. 사람이 죽을 때가 다 되면 안 보이는 게 보이나봐.”
“...”
“야, 나 죽으면 네가 나이 제일 많다? 음, 쌍둥이라 상관없나~”
“...”
“동생들, 잘 챙겨주라는 얘기야.”
오소마츠 형은 또 마른 눈을 했다. 제 손을 잡고 깍지를 껴보다가 슬프게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죽는 그 순간에, 네가 내 곁에 있어주라.”
좀 유치한 사랑 고백 같은 거야.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펑펑 울었다. 정말 모든 걸 쏟아내듯 울고 있자 오소마츠 형이 제 머리를 쓸어 넘겨줬다. 오소마츠 형은 정말 사람을 애달프게 하는 게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을 정도로 눈치가 더럽게 빠르면서 자기 감정은 숨기는 걸 사람 환장할 정도로 잘했다. 내가 겨우 진정할 때까지 너는 눈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근데, 만약에 우리가 이루어 졌어도.”
“...”
“너는 아마 불행 했을 거야.”
“...”
그냥, 나를 빨리 잊는 게 좋아.
네 말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우리는 정말 이루어 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는 안 만나는 게 서로한테 좋았어. 이번도, 만약이라는 다음 생도.”
네가 손을 잡았다. 그건 허공의 손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