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NCILCASE
붉은 이의 마지막은 붉었다
오소마츠가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다. 방 안은 마치 폭풍이 오기 전과 같이 고요했고, 고요함과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과 애석함이 오소마츠의 몸을 휘감았다. 오소마츠는 그런 조용함 사이에서 눈만 깜빡였다. 종이 몇 장만 눈앞에 둔 채. 약간 두툼한 종이에는 낡은 사진 몇 장과 함께 어떤 이들의 이름, 시간, 장소 등이 적혀 있었다. 그저 평범한 종이 한 장. 단지 그것뿐인 그 종이를 볼 때마다 오소마츠의 코끝이 찡해졌고, 쇠사슬이 그의 목을 잔뜩 조여 오는 것같이 아팠다. 그렇게 아픔만 묻어난 시간이 흘렀다. 원하지 않는 시간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흘렀다. 그가 느끼지 못 한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그가 살아온 날 중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간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그곳에서의 시간은 천국 같으면서도 지옥 같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계속 달렸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눈물은 오소마츠의 간절한 소망을 더욱 파고들 뿐 위로조차 없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저 앉아만 있던 오소마츠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그는 자신이 배고프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인식할 수 있었고, 인식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이유 모를 복통과 두통으로 고통스러웠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메스꺼움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는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본능적으로.
오소마츠가 부엌에 도착했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을 집어 먹었다. 마치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 그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을 양을 배에 집어넣었다.
한참을 그렇게 먹기만 했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오소마츠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는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구토를 했다. 좋지 못한 소리는 흐르고 흘러 조용한 집 안을 휘저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오는 이물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멈출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역겨운 무언가가 그를 괴롭혔다. 더욱더 괴롭게. 더욱더… 슬프고, 애처롭게….
겨우 진정된 것 같은 오소마츠가 물을 틀어 세수를 하고, 입안을 헹구었다. 퉤 하고 물 뱉는 소리가 화장실에 울렸고, 그와 동시에 오소마츠의 젖은 볼을 따라 내리던 물이 뚝 뚝 소리는 내며, 세면대 위로 떨어졌다.
“…하, 하하. 하….”
오소마츠는 헛웃음을 지으며,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세로로 세운 자신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얼굴은 아무도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섭고, 허탈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통해 보였다.
다른 이가 그런 그의 얼굴을 본다면 알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쌓아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마치 날개가 찢긴 천사처럼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그런….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숨기고 살아온 듯싶은 그런 얼굴….
***
오소마츠가 이미 물기 따위 남아있지 않은 얼굴을 쓱 닦으며 일어났다. 이젠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죽은 듯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을 향했다. 걷는 내내 그는 망설임과 아픔 사이에서 붕 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이유는 아마….
현관에 다다른 오소마츠는 여전히 망설임과 아픔 사이에서 붕 떠 있었다. ‘이대로도 괜찮아.’, ‘이게 나야.’ 식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비 따위 상관없다는 듯 빗물이 흐르는 땅을 맨발로 밟았다. 발바닥의 통증과 함께 심장이 아파져 왔다. 그는 아픈 심장을 오른손으로 움켜쥔 채 뒤로 돌았다. 그리고 보았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던 그 집을. 이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그 시절과 함께 그는 그 집을 자신의 두 눈에 담았다. 어쩌면 그가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그 집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오소마츠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더라도 듣지 못 할 정도로 그는 걷는 데에 집중했다.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기만 한 그의 발은 바닥에 있던 갖가지 (돌멩이와 같은) 뾰족한 것으로 인해 난 상처와 그 상처에서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상시의 그였다면 아프다고 난리부터 쳤을 테지만 오늘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픈 티도 내지 않았다. 여전히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체.
***
오소마츠가 많은 사람들 틈에 껴서 걸어갔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 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그런 비를 정통으로 맞으며, 맨발로 걷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오소마츠 역시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와 부딪히든, 누가 말을 걸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앞을 향했다. 앞에 무엇이 있든 그저 앞으로….
오소마츠의 귀에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차는 차도를 달리고 있었고, 비 오는 날의 차는 평소보다 빨랐다. 그런 차를 보는 그의 다리는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달리는 차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에 그의 시야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기억이다.